Review
돈키호테 후기

소설은 거의 안 읽다가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재밌게 읽은 뒤에는 다른 소설들에도 관심이 생겼다. 다음으로 읽어 볼 책을 고민하다가 『돈키호테』가 소설의 발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보고 이 책을 골라 읽기 시작했다.
읽어보기 전에 내가 『돈키호테』라는 소설에 대해서 아는 내용으로는 스스로를 용감한 기사라고 생각하는 돈키호테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과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돌진하는 일화 정도가 있었다. 그 외에는 전혀 아는 게 없었다 보니, 이 책이 어떤 내용과 재미로 위대한 소설이 됐을 지 기대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기 전에 조금의 배경 지식이 있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돈키호테』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는 중세 시대 방식의 기사라는 개념이 변해가고 있었고, 그런 기사를 영웅적이고 낭만적으로 표현한 기사도 문학이 대중적으로 유행하고 나서도 좀 지난 시대이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이런 기사 문학이 허구적이고 자극적으로 쓰인 경박한 내용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돈키호테』는 이런 기사문학에서 흔하게 나오는 클리셰들을 조금씩 비틀어 풍자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알론소 키하노라는 이달고가 기사문학에 심취하여 스스로가 기사가 되어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알론소 키하노는 기사가 되기 위해서 본인을 라 만차의 돈 키호테라고 칭하고, 마을의 객줏집 주인을 귀족으로 여겨 주인에게 기사 서임을 받는다. 그리고 기사 소설의 관습에 따라서 산초 판사라는 종자를 영입하고, 그저 시골 농부일 뿐인 여자를 둘네시아 델 토보소라고 칭하며 본인이 섬겨야 할 귀부인으로 섬긴다.
이후에는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여행을 다니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다룬다. 돈키호테는 모든 것을 기사적인 모험으로 착각하여 바라보고 있고, 종자인 산초 판사는 다른 사람의 말을 너무나 순진하게 믿고 사리분별을 잘 못하기 때문에, 둘은 여러 곳에서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키며 다닌다.
이런 모험 중에 돈키호테는 자신이 기사라서 객줏집에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억지를 부린다거나,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하는 등 많은 민폐를 끼친다. 현대 한국 사회에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돈키호테가 사회에 너무나 피해를 주는 사람으로 보였다. 게다가 돈키호테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는 마을의 조카딸, 가정부, 신부나 이발사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돈키호테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마을에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모험에 점점 애정이 생겨간다. 돈키호테 일행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냉정하고 현실적인 인물들이다. 돈키호테의 행동을 광기로 여기며, 돈키호테를 망상증 환자로 취급한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의 계산적이고 무미건조한 일상에 돈키호테라는 비일상이 들어와 색다르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어준다.
돈키호테 역시 단순히 고집이 강한 망상증 환자가 아니다. 돈키호테의 내면에는 깊은 철학과 정의로운 마음이 있으며, 불의를 넘어가지 않는 강력한 소신이 있는 인물이다. 이와는 대조되게 주변의 인물들은 신중하지 못하고 기회주의적인 모습이기 때문에 이런 돈키호테의 일관적인 모습과 정의로움이 더 부각되어 보여 점점 돈키호테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돈키호테를 도와주려 하는 인물들도 나타난다.

또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관계가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둘은 서로를 아끼면서도 서로의 신념에 따라 싸우기도 하며, 다시 화해하여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여행을 하면서 돈키호테는 산초 판사를 닮아가고, 산초 판사는 돈키호테를 닮아가는 모습을 보니 마치 두 인물이 실제로 살아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결국에 돈키호테의 모험은 끝나고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처음에는 돈키호테가 더 이상 주변인에게 민폐끼치지 말고 집에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읽었지만, 마지막에는 돈키호테의 모험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읽고 있게 된다. 사실 돈키호테는 일관적으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데, 같은 모습을 보고도 평가가 변한 내 모습을 보니 마치 내가 책 속의 우유부단한 등장인물 중 하나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돈키호테』가 기존의 기사문학에 대한 비판인지, 아니면 오히려 기사문학을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인지에 대해서 여러 해석이 있다. 책에 나오는 작가의 직접적인 말으로는 경박한 기사문학에 대한 풍자이자 비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의 말과는 다르게 이야기 중에는 돈키호테가 읽은 다양한 기사 소설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돈키호테의 대사 속에도 다양한 기사문학의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보면 최소한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기사문학을 매우 잘 알고 좋아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면 돈키호테라는 인물에 애정을 가지게 되고, 돈키호테의 모험을 응원하게 되기 때문에, 기사문학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보여준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돈키호테』가 담고 있는 메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돈키호테는 자신이 기사라는 환상에 빠져서 제대로 된 현실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망상증이 없는 주변인물 역시 제대로 된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상대방이 배신했다고 착각하고 혼자서 원망하고 포기하려는 인물이 나온다. 이런 인물은 본인이 사리분별을 할 줄 안다고 생각하고 돈키호테를 미치광이로 취급하지만, 오히려 본인의 ‘환상’을 깨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돈키호테이다.
결국에 우리가 스스로의 관점에 갇혀서 객관적인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은 돈키호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에게는 그 대상이 기사문학이 아닐 뿐, 본인이 굳게 믿고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관점에 휘둘리지 않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처럼 정의로운 내면과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생각해볼 여지가 많은 걸 떠나서 읽는 동안에 재미도 있는 소설이었다.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일으키는 사고들이 웃겼고, 서로 나누는 대화들도 재미있었다. 특히 산초 판사의 무슨 상황이든지 속담을 늘어놓는 습관을 가지고 돈키호테가 지적하는 부분이 웃겼다. 『돈키호테』 1권이 『돈키호테』 2권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기도 하는 등 독특한 설정들도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도 많이 있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읽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